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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여행] 난세의 지도자 호치민 역마살 여행

찍고 앰버김 2024. 6. 2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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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다녀왔다.
패키지여행이라 시간에 쫓겨 포스팅할 여유가 없었고 갔다 와서 호찌민에 대한 글을 올린다.

베트남 도착 둘째 날 아침 8시 하노이에 있는 바딘광장 Bha Din Square에 도착했다. 
바딘광장은 대통령궁과 베트남 국회, 외무성, 투자계획성 등 주요 기관즐이 모여 있는 베트남의 심장부이다.
입구에 들어서서 왼쪽을 보면 높은 화강암 건물에 호찌민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바로 호찌민의 시신이 묻혀있는 묘이다.
55세였던 호찌민은 1945년 바딘광장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최고 통치자인 주석의 자리에 올랐다.
호찌민의 시신은 평소에 방부처리되어 미라처럼 전시되어 수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요즘은 러시아에 추가 방부처리를 받으러 가 있다고 한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과 러시아의 레닌, 중국의 마오쩌둥도 시신이 방부처리되어 보존되고 있다.



호찌민 Ho Chi Minh (1890~ 1969)은 베트남의 초대 국가주석이자 혁명가, 독립운동가이며 1945년부터 1969년까지 재직했다.
젊은 시절 그는 프랑스, 독일,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부당성과, 프랑스의 베트남인 차별의 해악을 고발하고 수년간 프랑스에서 반제국주의, 반식민지 투쟁활동을 벌였다.
호찌민은 국민들에게 '단결'을 강조했는데 베트남 국민들은 2차 대전 때는 일본의 지배를, 2차 대전 이후에는 다시 프랑스의 침략을 국민의 단결된 힘으로 물리쳤다는 자부심이 강하다고 한다.
호찌민은 1955년 11월 1일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계속된 베트남전에서도 미국에 대항하는 민간군인을 이끌며 베트남을 전쟁과 침략에서 지키고 '독립'과 '통일' 두 가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지도자다.
베트남전은 1976년에 공식적으로 종전되었고 안타깝게도 1969년 그토록 원하던 베트남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숨졌다.
바딘 광장 뒤쪽으로 노란색의 주석궁이 있는데, 이 건물은 1908년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건축된 것으로 프랑스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1954년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호찌민의 주석궁으로 쓰일 예정이었는데 소박한 삶을 사랑했던 그는 근처에 있던 작은 전기공의 집을 선택해 1958년까지 지냈다.



전기공의 집이었던 54호 하우스는 호찌민이 1954년 12월부터 1958년 5월 중순까지 거주하고 일한 곳이다. 그 후 호찌민은 주석궁 정원에 지은 죽마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여전히 매일 이곳에 와서 식사를 하고 정기 건강 검진을 받았다.
이곳에는 작업실, 가운데는 식당, 침실이 있는데 식당에는 호찌민이 쓰던 식기 세트가 전시되어 있다. 호찌민은 "국민들이 굶고 있는데 내가 배부르게 먹을 수가 없다"라며 반찬을 4가지만 식탁에 올리게 했다고 한다.



54호 하우스 옆에 세대의 차가 있는데 주로 외국 공사들을 응대하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호찌민은 1958년부터 그가 사망한 1969년까지 54호 하우스 근처 호숫가에 있는 목재 2층집으로 옮겨 가 거주하며 일했다.  
호찌민 죽마집 주변은 정원, 화원과 물고기 연못이 있어 평화롭다.
호찌민이 이 죽마집 (오랜 된 목조 통나무 집)으로 거처를 옮긴 이유는 베트남전의 전시 상황에서 나무로 만든 눈에 안 띄는 집에 살면서 만일에 있을 폭격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죽마집을 아래에서 본 모양이다.
호찌민 죽마집은 기와지붕과 함께 오크로 만든 2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 앞에는 여러 종류의 향기로운 꽃들이 심어진 작은 꽃밭이 있다. 그의 고향을 연상시키는 무궁화 울타리도 있다.



죽마집 바로 옆에 있는 대피소 겸 사무실이다.



죽마집의 아래층은 손님을 접대했던 곳인데, 호찌민은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이 즐거워야 한다며 초대해서 놀게 하기도 했단다.



위층에는 두 개의 방, 사무실과 침실이 있다.
호찌민이 쓰던 책과 가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호찌민의 유품과 삶의 방식에서 단순하고 겸손하며 소박한 생활 방식과 조국과 국민들에 대한 헌신을 엿볼 수 있다.
호찌민은 가난한 유학자의 집에서 태어나 펑생을 욕심 없이 살았다.
그는 1926년 1년이 채 안 되는 결혼생활을 했었고 호찌민과 같은 혁명가였던 여성과 한 번의 짧은 연애를 했으며 아이는 없었다.
가이드에 의하면 사후에 그의 통장에 5만 원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54호 하우스와 죽마집은 1954년 12월부터 1969년 9월까지 호찌민 주석의 15년간 거주와 근무에 관한 중요한 기념물이 되었다.



낮 기온 38도, 바람이 거의 안 불어서 체감온도 40도가 훌쩍 넘었다.
바딘광장부터 시작해서 호찌민이 살던 집들을 둘러보느라 2시간 넘게 걸었더니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차가운 생수를 계속 들이켰고, 가이드가 데려간 쌀국숫집에서 점심으로 고기와 밀가루를 기름에 튀긴 유탸오가 들어간 쌀국수를 먹었다.
고기는 소고기가 아니라 물소고기를 오랜 시간 푹 끓여서 올린 거라는데 소고기와 똑같은 맛에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다.
파와 참기름이 듬뿍 들어간 간장 양념장을 양껏 넣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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