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노래 강습을 등록했다.
연말도 다가오는데 노래방에라도 가려면 음이탈에 고음불가 노래 실력 가지고 마이크 잡는 건 창피하고 듣는 사람에게도 민폐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 블로어-영에 있는 중앙도서관 (Reference Library)에 있는 무료 노래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하고 가려는데 붉은 파마머리의 창구 여직원이 나를 부르더니 내일 예약한 것은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연달아 오는 건 안된단다.
이틀 전에 이 자리에 있던 다른 직원이 내일도 예약해 줬다고 하니까 그 사람은 정직원이 아니라 실수한 거고 자기는 취소시켜야겠다며 백인 특유의 딱딱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내가 다른 직원이 잘못했더라도 이미 잡아놓은 예약을 굳이 취소할 것까진 없지 않냐? 그냥 있는 대로 놔두고 다음부터 연달아 예약 안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는데 "NO, I SAID I HAVE TO CANCEL"이라며 큰소리로 어림도 없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한번 더 애걸하듯이 부탁했지만 "NO"라는 매몰찬 대답이다.
알았다고 하고 그냥 가려다가 속으로 '내가 저희들처럼 백인이거나 여기서 태어나서 외국인 액센트가 없다면 나를 똑같이 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분해서 얼굴이 벌게지도록 화가 치밀었다.
나에게 고압적으로 대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고 싶어서 붉은 머리 직원의 이름을 묻고 매니저 명함을 달라고 해서 가져왔다.
나는 스페셜리스트 의사 병원에서 리셉션 겸 매니저로 일한 적이 있다.
캐나다의 2차 진료는 굉장히 느긋해서 전문의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우스갯소리로 수술 날짜 기다리다가 죽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일하다 보면 자기가 위급하다며 예약 날짜를 빨리 해달라고 전화하거나 찾아와서 애걸복걸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캐나다식으로 "No"하고 Policy 운운하며 병원 정책을 따라서 순서대로 예약을 잡으니 기다리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최대한 그들의 말을 들어주었다. 한국인 특유의 융통성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예약을 잡고 급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뒤로 늦췄다.
내가 환자 예약을 잘해준다는 게 소문이 났는지 병원은 문전성시였다.

토론토는 내가 봤을 때 보편타당함이란 게 없다. 누가 옷을 어떻게 입든, 머리를 어떤 식으로 기르든 땋아 올리든, 채취가 어떻든 소위 상식의 선에서 용납이 안 되는 것도 다 개인의 자유로 인정된다.
또한 대마초 야외 흡연이 합법이고 거지와 정신병자에게 후원을 하는 등 관대하다.
근데 내부적으로는 원리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이고 심하진 않지만 명백한 인종차별이 있어서 마음에 공허함이 생겨 항우울제 약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거절할 때 "Yes and No"라는 말이 있는데 얼굴에 웃음을 띠고 부드럽게 말하면 듣는 상대가 반발하지 않고 안심하며 듣게 된다.
이 말은 긍정과 부정을 한꺼번에 하는 모호한 대답이지만 설득이 필요할 때 대안을 제시할 테니 합의점을 찾자는 의미를 포함한다.
나처럼 너무 많은 "YES"를 해서 돈도 좋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일을 하게 되는 것도 안 좋고, 오늘 본 붉은 머리 여직원처럼 너무 쉬운 "NO"를 해서 탱탱 놀며 월급 받는 것도 안 좋다.
한국이나 캐나다나 모두 사랑이 넘치지만 각박한 것이 현실이다 보니 종교, 가족, 친구의 정신적 뒷받침, 또는 나 자신 내면의 풍족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궁극적으로 NO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면 무념무상 군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걸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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